안의면 소재지에서 동북 방향으로 향하면 교북리가 나타난다. 마을에 들어서 길을 따라 가면 좌측으로 높다랗고 커다란 기와지붕이 보인다. 그곳이 바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6호인 안의향교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안의 향교는 ..
영원사(靈源寺) 도솔암은 마천면 삼정리에 위치한다. 그곳은 사명대사의 사형인 청매조사가 수행하고 열반한 도량이다. 흔적만 남아있던 터에 조계종 종정을 지낸 고(故) 혜암 스님이 창건했다. 혜암 스님이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수행할 때였다. 그곳에서 바라보면 청오조사가 수행한 토굴 터가 보였다. 예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오솔길 하나뿐이었다. 채완은 그 길을 눈 감고도 갈 수 있었다. 뽀드득 뽀드득 조심스레 눈을 밟으며 암자를 나섰다. 그런데 한참을 왔는데도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매일매일 학교 가던 길인데 영 낯설었다. “뿌지직”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렸다. ‘혹시 곰?’ 오래전에 들..
계절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 숲속의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고 또 갈아입었다. 채완이는 육학년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선긋기가 아니라 불화를 그렸다. 불화를 그리는 것은 힘들었다. 힘든 만큼 재미도 있었다. 잘 그려서 노스님께 칭찬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노스님은 좀처럼 칭찬을 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만 잘못..
채쟁채쟁 챙챙∼. 꽹과리 소리가 시원하구나. 장구소리, 징소리도 들리네. 한바탕 벌어지는 사물놀이에 귀가 번쩍 뜨이네. 어깨가 저절로 덩실덩실 거리네. 어디 잔치라도 열린 것일까. 아니?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어. 아침까지도 조용했는데, 잠깐 졸은 사이 사람들이 모였구나. 그러고 보니 정월대보름날이네. ..
봄은 지리산 깊숙한 골짜기까지 진달래꽃을 피워놓았다. 온 산이 붉은 진달래 물결로 일렁인다. 그 꽃물결 속에 도솔암이 있다. 도솔암 뜰 가득 햇살이 쌓인다. 진돌이는 봄볕에 낮잠을 자다가 기지개를 켰다.
유림면 엄천 마을 앞에는 커다란 비석이 서 있다. 처음 그곳을 지났을 때는 눈 여겨 보지 않았다.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 글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원의 이름이 적혀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날은 남편이 큰소리로 비석의 글귀를 읽었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서상. 서하로 흐르면서 기이한 바위와 담. 소를 만들었다. 그곳을 화림동 계곡이라 부른다. 오래전에는 팔담팔정(八潭八停)이라 하여 8개의 못마다 하나씩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함양에 정자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가 무오사화 때문이다. 사화 이후 영남의 선비들은 중앙 진출에 배제되었다. 그래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시서를 논하며 풍류를 즐겼다.
서하면 운곡리에 있는 은행나무를 찾았다. 천연기념물 제 406호였다. 누구는 팔백년을 살았다고 했고. 또 누구는 천년을 살았다고 했다. 높이 38m. 둘레 8.75m의 거목은 무성했던 잎들을 다 털어내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지를 허공에 가득 펼쳐놓은 모습에서 서늘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아침부터 하늘이 잿빛이었다. 태양은 숨바꼭질을 하듯 구름 속을 들락날락거렸다. 혹시나 눈이라도 흩날릴까 싶어 허공을 바라보면 태양은 구름 속에서 빠꼼히 얼굴을 내밀고는 했다. 그럴 때는 언제 흐렸느냐는 듯 투명한 햇살이 반짝였다.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허삼둘 가옥(許三둘 家屋. 중요민속자료 제207호)에 도착했을 때 변덕스런 태양은 환한 햇살을 공작의 꼬리처럼 펼쳤다. 금빛 햇살 속에 고택의 검은 모습이 드러났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가옥은 화마가 휩쓸고 가버려 옛 모습이 남아있지 않았다. 허나 기와집은 무너지지 않고 소생을 꿈꾸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오래된 기와집을 참 좋아했다.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많은 고택을 찾아 다녔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기와를 얹은 지붕을 찍었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대청에 앉아 눈을 감고 묵은 숨결을 들여 마시기도 했다. 허삼둘 가옥도 그 중의 하나였다.
여보세요? 어? 이게 누구야 살아있었네. 요즘 어떻게 지내니? 바쁘게 지낸다구? 나? 나도 바쁘게 지내지. 오늘은 조금 한가해서 상림에 산책을 하러 나왔어. 참 너 함양 토박이라고 했지? 너 함양군민헌장이 있다는 것 알고 있었니? 아니. 국민교육헌장 말고 함양군민헌장 말이야. 모른다구? 나는 알고 있는데······. 내가 더 함양 토박이 같다.
할머니의 몸은 열이 펄펄 끓었습니다. 매일매일 잠만 잤습니다. 엄마는 여러 가지 약초를 달인 물을 할머니에게 먹였습니다. 며칠 뒤 할머니는 열은 내렸지만 기침은 쉽게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슴을 부여잡고 기침을 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봉점의 가슴도 따끔거렸습니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야겠어요?” “늙어서 하는 기침인데 병원은 무슨······.” 엄마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할머니 고집은 고래심줄처럼 질겼습니다. 엄마는 또 다시 도라지를 다렸습니다. 그 물을 마시면 기침이 멈춘다고 했습니다. 봉점이네 밭에서 자라는 도라지는 산삼처럼 약효가 좋다고 소문이 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도라지 달인 물을 먹고 할머니의 기침은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봉점은 할머니가 낮잠을 주무실 때 혼자 돌부처를
옛날 옛날. 하지만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옛날입니다. 대덕리 필봉산자락 어디쯤에 아주 작은 산골마을이 있었습니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고 함양읍이 환하게 보이는 곳입니다. 그곳에 봉점이네가 살았습니다. 봉점이네는 산비탈에서 매실. 도라지. 밤나무 등등 여러 가지 농사를 지었습니다.
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이다. 약 1.100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당시 함양태수를 지내던 최치원이 호안림(護岸林. 제방의 보호를 위한 숲)으로 조성한 인공림이다. 사람들은 함양을 흐르는 하천의 범람과 수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물길을 돌렸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안의면 상원리에 있는 용추사를 다녀왔다. 용추계곡에 들어섰을 때 콸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물은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면서 밑으로만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어떤 생명을 가진 존재 같았다. 어쩌면 전설 속에 나오는 이무기가 수용(水龍)이 되어 계곡을 휘저으며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스름이 내리는 시각 길을 나섰다. 차창 밖으로는 거친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쉼표 없이 떨어졌다. 빨갛게 익어가던 사과는 가지를 악착같이 붙들고 있고 들판의 누른 벼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흔들렸다. 모두들 시련의 시간을 잘 견디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한참을 달렸을까. 커다란 누각이 눈에 들어왔다. 안의 읍에 있는 광풍루(경남유형문화재 제92호)였다. 바람은 누각에 부딪치며 짧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 ...
안국사 무량수전의 화사한 단청은 여름날의 땡볕을 튕겨내고 있다. 빛들이 하얗게 부셔진다. 그 빛이 부셔서 눈을 감는다. 그 때. 손안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통화를 누르니 십년지기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냐고 묻는 말에 절에 왔다고 한다.
지리산 금대봉 숲길을 푸른 바람과 함께 오른다. 하얀 길은 늙은 할머니의 허리처럼 굽어져 있다. 한참을 갔을까. 가파른 언덕에 파란 대나무 밭이 보인다. 점점이 흩어져 있는 하얀 망초 사이에 키 작은 석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향교는 유교의 옛 성현을 받들며. 지역 사회의 인재를 양성하고 미풍양속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된 지방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조승숙(趙承肅) ‘명륜당기明倫堂記’에 의하면 태조 7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대성전을 중수하고 동재. 서재. 문루를 건립했다고 한다.
금대암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34호)을 보기위해 돌계단을 오른다. 석탑은 대부분 법당 앞에 자리한다. 그러나 금대암 석탑은 법당보다 놓은 곳에 있다.